담임 목사님의 주일 말씀을 요약 하였습니다.

05/02/10 참포도나무와 가지

조회 수 714 추천 수 0 2010.05.02 22:00:11

성서: 이사야 ISAIAH 57:15-16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


 고린도 전서 1 CORINTHIAN 12:12-27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제목: 참포도나무와 가지

   지난 주 스웨덴보그 신학교 이사회를  위해서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습니다. 가 보신 분은 아실 테지만 참 기후가 좋고 아름다워서 살고 싶어지는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뉴욕도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입니다. 잘 느끼지 못할 만큼 힘들게 살고 있어서 그렇지, 다른 어느 곳을 가든 뉴욕만한 곳도 드뭅니다. 이번에 가서도 버클리 대학 캡퍼스 바로 옆에 있었던 관계로, 그 교정과 주변 주택가를 아침 일찍 산책을 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회의이기 때문에 운동도 필요하고, 시차 차이 때문에 그곳 시간으로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잠이 깨기 때문이었습니다. 걸으면서, 제 마음껏 자라고 꽃을 피운 온갖 화초와 식물들을 보면서, 정말 그 싱싱함과 생동감에 탄복할 정도로 식물들이 크기에 이렇게 좋은 환경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창조물에게 이렇게 계속적으로 생기를 주고, 지탱시키시며 그 생명의 질을 발전시키십니다. 우리 인간의 삶의 질이 지난 수십년 동안 얼마나 많이 향상되었는지요? 그리고 그 발전은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잠시 왁작지껄하는 소음을 우리들에게서 몰아내 보십시다. 가끔 때때로 우리는 이러한 명상이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이 느껴지고, 이해로 다가오심을 알게 됩니다.

이사야는 이를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 곧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니 이는 겸손한 자와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시기 위함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 인생 여정의 길이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영적 성장이 얼만큼 되었는지도 말입니다. 자녀들의 학교 성적이나 주식 시가나, 가스비의 오르내림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생명의 질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그저 늙어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쇠해 갈수록 영은 더 높아지고 지혜로워져야 하는 일입니다. 왜냐면 사람은 자연계에 살면서 영적인 것들을 새롭게 하고 중생시키어, 하늘나라에 맞게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여 이해하고 실천하는 삶으로서만 가능하며, 일단 육신을 벗은 사후에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삶은 어느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중요한 시간이며, 기회입니다. 이것을 위해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 15:5)하시며 주의 사랑 안에서 항상 생기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산이나 바다등 자연을 찾기를 즐겨합니다. 그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물에게 주시는 생의 기운과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그것을 느껴보고 받고자 하여 자연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이해를 가지고 사람은 주님에게로 더욱 향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그저 자연의 멋에 빠져 머무를 수밖에 없다면, 그는 자연 숭배자가 되는 것이며, 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을 보드라도, 과학의 오묘하고 신비한 작품을 보드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높고 거룩하심을 느끼며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무와 가지의 연결이 계속되어지며,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나 과학에 눈이 가려 허망한 망상이나 이론이나 가설 등 혹은 연구결과의 그늘 속에서 어둡게 사라져갔습니까? 그것은 스스로 빛이신 주님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업적이나 총명을 높이 사고자 했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면 잘 찾는 주님을 조금 형편이 나아지고 편해지면, 하나님의 은혜라기 보다는 자신이 잘났기 때문에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게 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블레셋이라는 족속이 시도때도 없이 틈만나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으로 표징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스라엘 민족으로 표징하고, 가나안을 정복하기까지 줄곧 침략을 받거나 이방민족들과 전쟁을 하는 그림으로 그려놓았습니다. 그 중에 자기자신의 힘을 합리적으로 미화하여, 하나님이 없어도 자신의 지혜나 힘만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교만을 블렛셋 족속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는 이 블렛셋 족속의 침략을 수도없이 많이 당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자만이나 교만이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여러 지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지체는 곧 교회 안에 성도가 된 우리 자신들입니다. 목사는 목사로서, 집사는 집사로서, 권사는 권사로서, 그리고 성도는 성도로서의 몫과 일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것 없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주님을 따르며, 주의 몸된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서의 일을 다하고 있는가? 나는 주님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온 요한의 제자들이, 바로 눈 앞에 있는 예수께 "주님 어디 계십니까?"하고 물었을 때,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십시다. 우리가 주님에게서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님과 결합되는 정도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웃사랑과 믿음에 비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웃사랑 안에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한국 TV의 프로그램 중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빈곤국가 중 더러운 물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을에 가서, 우물을 파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고 감동스럽게 보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출연자들의 얼굴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그려 보았다고 하면 제 표현이 지나친 것입니까? 아니면 그렇습니까? 이웃사랑은 멀리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웃사랑의 실천장입니다. 교회 안에서 조그만 이웃사랑을 실천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며, 그분에게는 하늘의 기쁨을 갖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기쁨은 우리의 생명을 소생시키며, 새생활을 이끄는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껍데기 신앙은 소용없습니다. 저는 어느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참으로 이 세상에는 진실을 바로 알고 찾는 것이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은 생각입니다. 생각이 올바르면 말도 정직해지고, 미사려구의 아름다운 말이 비록 아닐지라도 진실을 말하며, 선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생각이 비뚤어지고 간교하면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이래도, 그 겉포장이 벗겨지면 곧 더러운 내용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아무리 말하는 기술이 좋아도 언젠가는 그 속셈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말없음이 낫다고 하여, 이용도 목사는 자신의 호를 “시무언”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을 많이 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진실만 있으면 됩니다.


    ELIZABETH FEDDE(1850-1921)라는 여인이 NORWAY의 FLEKKEFJORD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LOVISENBERG DEACONESS HOUSE라는 곳에서 집사가 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처음 생애의 대부분은 자기 고향인 TROMS라는 곳에서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살며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32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BROTHER -IN -LAW인 GABRIEL FEDDE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뉴욕에서 노르웨이 어부들이 머무는 곳에 와서 일해볼 생각이 없는가고. 뉴욕에 도착한 그녀는 1883년 4월에 뉴욕에 정착하여 NORWEGIAN RELIEF SOCIETY를 세웠습니다. 그 기관은 SEAMAN'S CHURCH 부근의 WILLIAMS STREET에 있었으며, 한 달에 9불로 RENT를 주는 방 세 개가 있었습니다. ELIZABETH는 또한 아픈 사람과 낙오된 사람들을 찾아 위로하는 일을 하며, 그녀의 경험들을 일기에 썼습니다. 1885년 그녀는 자신의 목회를 가르치기 위해 여자 집사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학교는 9개의 병원침대가 있는 집이었으며, 그 집이 오늘날 LUTHERAN MEDICAL CENTER IN NEW YORK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미네소타에서 목회의 요청을 받아 그곳에서도 루터란집사 학교와 교회 그리고 무료 병원을 세웠으며, 시카고에서도 세 번째로 그리 하였습니다. 마침내 미국에서의 여자 집사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1895년 귀국하여, 그녀를 평생 기다려온 구혼자인 OLA SLETTEB씨와 결혼하였고, 1921년 2월 25일 그 생을 마쳤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대로 살다간 한 여인의 일생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녀의 생은 이웃사랑의 흔적을 이 땅에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이웃사랑의 삶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것은 그녀의 이웃사랑이 바로 주님의 사랑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이 이런 길이 아닐까요? 엘리자베스와 같은 그런 큰 일이 아니라해도 우리가 입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일은 해 볼만 한 것입니다.  실천하시는 한 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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