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구약: 이사야 ISAIAH 55:8-11 신약: 누가복음 LUKE 24:13-35
제목: 눈이 떠져야 보이는 주님
성경은 거룩합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의 마음이 그 글자들 안에 들어 있음이며, 또한 사람들의 모든 조건이나 시대에 걸쳐 인간의 삶에 직접 간접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스웨덴보그는 성경을 통해 얻어지는 이러한 경험들과 능력들을 “하느님 스타일(DIVINE STYLE)"이라 하였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성경의 글자와 이야기를 통한 대응의 언어로 사람들과 교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1. 이사야는 밝히기를, '하나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 더 높고 깊어 사람의 생각이 미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 길도 달라 비 한 방울도 헛되이 내리시지 않으며, 모든 것을 완수하여 목적을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우리는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신령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자연적인 마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의 이 말씀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신령한 지혜와 신령 생명 그 자체가 내재된 말씀이라 해도 믿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그들 스타일대로 가늠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하느님 스타일대로 쓰여진 글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스타일도 견줄 수 없는 하나님의 독특한 방식으로 기록되어진 성경은 그 각 글자마다, 각 문장마다 거룩하며, 심지어 그 여백들마저도 거룩합니다. 바로 그 여백의 공간에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만남과 결합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325 가구가 사는데, 입구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출입을 감시하는 수위(security guard) 중 한 사람이 저를 볼 때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일어서서 악수를 청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당신 부인도 그렇습니다. 존경합니다.”는 인사를 볼 때마다 합니다. 그래서 어느날은 조금 민망해서, “당신도 그렇습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니까 당신 눈에 보여지는 나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겁니다”하고 대답을 해주었더니,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좋아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성실한 청년입니다. 밤에 일할 때도 어떤 사람은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데, 그는 시간맞추어 아파트 구석구석을 순찰하였습니다. 어쨌든 그 사람과 저는 좋아하고 존경하는 스타일이 맞았다고 할까요? 요즘 말로 코드가 일치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도 코드를 맞추어야 합니다. 당연히 우리가 하나님 스타일에 맞추어야지 우리 스타일로 하나님이 맞추랄 수는 없는 것이지요.
2. 어떤 사람이 재치 있고 슬기롭게 행동할 때, 흔히 그 사람 센스가 있다고 말합니다. 무언가 겉으로나 형식적으로만 하지 않고, 그 내용이나 의미를 깨달아 대처할 때 이르는 말입니다. 성경 말씀 안에도 외부적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센스(sense)와 내부적이며 속 깊은 센스(의미)가 있습니다. 글자의 뜻으로 드러난 의미는 자연적이고, 속뜻으로 드러난 뜻은 영적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를 자연적인 뜻만으로 받아 들여 이해하는 사람은 자연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으나, 영적인 뜻으로 받는 사람은 주님 왕국의 천사들과 영적으로 교통하여 영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성서의 가장 깊은 내적인 뜻은 천상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천사들이 주님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되며, 초 영적인(super-spiritual) 사고를 가능할 수 있게 합니다. 사람의 두뇌를 40%만 쓴다면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라고 하는데, 보통 사람은 주어진 능력의 15% 내지 20% 정도만 사용하며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사람보다 더 높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높은 능력자로부터의 연결은 우리를 더 높은 경지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의 내림을 스웨덴보그는 INFLUX, 입류라 했습니다.
3. 예수와 함께 가던 두 제자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는 그들 스타일이 주님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 그들은 함께 동행하던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이신 줄 깨닫게 되었습니까?
주님이 축사하신 떡을 나누어 먹었을 때였습니다. 성찬을 나눌 때 떡(빵)과 포도주로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떡(빵)이라는 글자가 뜻하는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그 답은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오천 명과 사천 명을 조금의 떡으로 먹이신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내 몸이다. 내가 주는 이 떡(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배고르지 않으리라'고도 하신 떡이 무엇일까요?---선(good)을 행할 때입니다. 곧 선행(good deed)입니다. 주님의 진리대로 올바르고 착하게 실행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스웨덴보그는 선용(use)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말로만 백 번 믿습니다고 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생각으로만 수없이 사랑한다고 해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중심적 사랑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곳에서 우리는 주님의 주파수를 감지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주님과 같은 스타일의 예수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우리 눈이 밝아져야-성경 말씀에 대한 영적 깨우침이 있어야- 주님을 뵐 수 있습니다. 무선 교신도 주파수가 서로 맞아야 하듯이, 우리의 성경에 대한 영적 이해가 주님의 마음과 코드가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주님께로 향해 있는지? 아니면 세속과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보시는 한 주일이 되시길 빕니다. 주님 안에서 평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