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이사야 ISAIAH 25:6-9 누가복음 LUKE 24:1-12
제목: 주님 부활의 영광
사 복음서를 쓴 성서 기자들은 부활절의 희망과 새 생명의 놀라운 이야기를 조금씩 다른 각도로 기록 하여서 어느 복음서 하나에 의해 이해되는 것보다 더 완전한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제자들보다 여인들이 먼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발견하였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나중에 그 일을 알게 되었음을 강조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우리가 인지하게 되는 것은 그것을 우리의 마음(mind)으로 이해할 수 있기 전에 먼저 가슴(heart)으로 받게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마이클 H.하트의 [세계사를 바꾼 100명의 사람들]이란 책에 보면 세계 역사상 위대한 인물 100명 중 여성의 숫자는 단 2명에 불과합니다.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라 여왕과 대영제국의 전성시대를 연 엘리자베스 여왕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상황에 비교해 보면 그당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와 체제 속에서 억압받은 여성들의 능력이 드러날 수 없었던 통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부문에 있어서는 여성이 남성을 능가하는 능력을 발휘하며, 지금은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많은 활약을 하고 있음을 봅니다.
특별히 성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보면, 제자들보다 여인들의 활약이 훨씬 뛰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부활의 새벽에 빈 무덤을 처음 발견했던 사람들도 제자들이 아니라 여인들이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만난 사람도 예수님을 사랑했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여인들과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함께 생활을 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붙잡히자, 너도나도 모두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같이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마가복음
15장을 보면 이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지켜보다가 예수님께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시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갈 정도로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여인으로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며, 또 그런
용기가 가능했던 것은 여인들의 마음 속에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인들의 사랑은 제자들의 것보다 더 강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사랑이 이지적인 머리에서가 아니라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온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기뻐하고, 사모하는 우리의 가슴도 그 여인들이 가졌던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따르는 간절함에
가슴이 울렁거려야 합니다. 안식일이 지난 아침, 비록 예수의 시신만이라도 향유를 발라 모시고자 무덤을 향해 가던 여인들은
'무덤문을 막은 큰 돌을 어떻게 치울 수 있을까?' 하며 걱정을 하였지만, 그들이 당도하기 전 이미 그 돌은 치워져 있었고, 천사가
그 돌위에 앉아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돌은 좋은 의미로는 선한 진리를 뜻하지만 부정적 의미로는 생각이나 교리가 고집스럽게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신령진리로 오신
구원주를 부정하여 죽이고, 밀봉하여 말살하기 위해 무덤을 막았던 돌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과 율례들로 굳혀진 위화된 진리 내지는 교리를 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돌은 여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치워져 있었고 천사가 그 돌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곧 주님을 사랑하여 그에게로 가는 사람에게는 거짓과 위선으로 변질된 교리를 주님께서 치워버리시고, 신령한 진리를 열어 보여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뉘어졌던 무덤 안에 한 천사가 머리 쪽에, 다른 천사는 발쪽에 앉아 있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신령 진리의 '처음이요 나중' 이신 것을 표징(signify)하신 것으로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중생과 구원하시는 신령 섭리의 역사로, 그 신령한 역사는 매일, 아니 매 순간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지는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부활은 새 사람의 시작이며, 새 교회의 태동인 것입니다.
첫째, 주님은 매일 매 순간 중생하려는 사람의 마음에 부활하십니다.
둘째, 선과 진리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모든 잘못된 원리들을 몰아내어야 신령 선과 신령 진리가 그 사람 안에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세째, 예수님은 그렇게 인성(humanity)에서 오는 모든 욕망을 몰아내시고 신령한 몸(Divine Human)을 입게 되셨습니다. 그러시기 위하여 시험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네째, 주님의 영광은 하느님 사랑과 하느님 진리가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형용할 수 없게 신비롭습니다. 마치 사랑의 힘이 위대해 이 세상의 어느 것도 그 사랑을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섯째, 이제 그 사랑을 얻고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첫 단추부터 잘 끼워나가야 합니다. 그 첫 단추는 바로 주님께서 가르치신 계명을 지키며 사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종국에는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벽 아침의 동쪽은 주님을 뜻합니다.그 새벽 미명에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달려가던 제자들과 같이 여인들의 사랑만큼은 안되지만 그래도 그 주님을 만나보기 위해 달음질치던 제자의 열정은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절 동트는 새벽에 예배를 드리는 것도 그런 의미를 되찾고픈 바램에서 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